대한의학회 회장
정 지 태
이 글을 쓰기에 앞서 고민이 있었다. 내가 속하지 않는 단체에 무엇인가 바란다는 말을 할 때 그냥 좋은 말로 좋게 갈 것인지 아니면 단체의 발전을 바라는 마음에서 평소 가지고 있던 이야기를 솔직히 할 것인지에 대한 것이다. 나이가 들면서 욕먹지 않고 사는 처세술을 터득해서 남들이 들어서 기분 나쁠 이야기는 되도록 피하고 사는데, 한림원이 가지는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어, 오랫동안 의학계에 종사한 사람으로서 바라는 바가 있어서 솔직하기로 하였다. 글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고깝게 생각하지 않으셨으면 하는 마음이다.
대한민국의학한림원이 생긴 지 20년이 채 되지는 않았지만 그동안 많은 발전이 있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아직 의료계 내에서 의학한림원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 단체인지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 법정 단체로 등록된 후 조직이 확대되고 참여 영역이 넓어지고 있으나 참여하고 있는 회원의 학계 내 명망에 비해, 그들이 속한 이 단체의 인지도가 부족하다는 것은, 원래 한림원의 목적인 대한민국 의학 진흥과 선진화를 이끄는데 큰 힘으로 작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을 필자는 하고 있다. 인지도 향상을 위한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국내에 한림원이란 이름의 단체가 몇 개 있다. 과학기술 한림원, 공학한림원 등이 있는데, 이들 단체와 상생 속에서 경쟁해야 하고 그 중 최고가 되어야 할 것으로 믿는다. 미래는 생명 과학이 중심이며, 생명 과학의 중심은 의학이고, 그 의학에 관련된 석학은 의학한림원 소속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중요한 위치에 있는 단체가 아직도 재정 자립도가 낮다는 것은 문제이다. 재정 자립이 안된다는 것은 충분한 사업을 펼칠 수 없다는 이야기와 관련이 있고, 활동이 미약해질 수밖에 없는 문제점을 공유하게 된다. 그러면 회원 각 개인이 보건의료정책자문을 하더라도 의학한림원 이름으로 권위 있는 자문을 하기 힘들어진다.
코로나 팬데믹 사태를 지나면서 우리는 믿을 수 있는 자문이 필요하다는 것은 느낀다. 정치에 휘둘리지 않는 자문을 받으려면 의학한림원에 연락하라는 소리가 나오기를 바란다. 재정 자립을 하기 위한 수익 사업이나, 기부금 사업이 활성화되었으면 한다. 의료법상 법정단체이므로 국가가 충분한 활동 예산 지원 이외에도, 회원들에게 활동비를 지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믿는다. 이런 이야기를 꺼내면 ‘국민의 합의가 필요한 사항이다.’라는 지원 회피를 위한 대답이 예상되긴 하지만 그를 위한 노력도 필요해 보인다.
가끔 한림원의 원로 회원님을 뵙고 이야기하다 보면 ‘옛날에는…’ ‘우리 때는…’이란 말씀을 하시면서 요즘의 현실을 못마땅해 하시는 것을 뵙니다. 나도 후배들에게 그러고 살고 있으니 이런 글을 쓰면 너나 잘하라는 말을 듣기 딱 십상이다. 그걸 알면서 이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대한민국의학한림원은 우리 의학의 미래를 선도할 석학들의 모임이기 때문이다. 모두들 후배들에게 이야기하실 때 ‘미래는…’이란 말로 이야기를 시작해 주셨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늘 새로운 것에 대한 일깨움을 주셨으면 하는 마음이다.
대한민국의학한림원의 창의적 발전을 기원하고 요즘 부각되고 있는 연구윤리, 임상의료와 관련된 윤리에도 깊은 관심을 기울여 주시기를 또한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