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양은배
의과대학 입학정원은 정부와 의료계뿐만 아니라 사회와 국민의 관심이 높은 사안이다. 적정 의사 수와 의과대학 입학정원 규모에 대한 논의부터 필수의료와 지역의료에 미치는 영향, 의과대학의 교육역량과 의학교육의 질적 수준, 우수 학생의 이공계 대학 진학 기피, 사교육 시장에 대한 우려까지 관심 영역도 다양하다. 의과대학 입학정원 증원의 찬·반과 관련한 주장과 논거는 지금으로 충분하고, 의견을 하나 더 한다고 해도 새로운 제안은 아닐 것 같다. 더 중요한 점은 의과대학 입학정원 정책을 논의하는 지식인의 책무이다.
세계적인 언어학자 놈 촘스키(Avram Noam Chomsky)는 그의 저서 ‘지식인의 책무(writers and intellectual responsibility)’에서 지식인은 진실을 말할 책무가 있다고 말한다. 중요한 문제에 대해서 진실을 찾아내 국민에게 알리는 것이 지식인에게 주어진 도덕적 과제라는 것이다. 의과대학 입학정원 논의와 관련한 지식인의 책무는 무엇일까. 일부에서는 고령화 추세, OECD 평균과 의사 인력 추계 결과를 인용하여 공급 부족을 말한다. 또 다른 사람은 인구감소, 의사 인력 증가율을 고려해야 하며, 필수의료와 지역의료의 문제는 분포의 문제라고 말한다. 의사 인력 증원에 관한 논의는 어떤 것이 맞고, 어떤 것이 틀렸는지 혼란스럽다. 진실은 어떤 것이 맞고 틀리고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왜곡을 바로잡고, 착오를 배제하며, 가려진 것이 드러났을 때 밝혀지는 것이다. 우리나라 의료환경과 의료제도에서 OECD 지표는 평균의 왜곡이, 현재의 가정에 기초한 의사 인력 추계는 미래 의료환경과 정책 변화를 반영하지 못하는 인과관계의 착오가 있을 수 있다. 근거자료의 부족, 불충분한 정보 공유 및 의사소통의 실패는 일종의 ‘드러나지 않은 것’이 될 수 있다. 의과대학 입학정원 증원 논의에서 무엇이 왜곡되었고, 어떤 착오가 있으며, 어떤 것이 부족한지를 말하는 것이 지식인의 책무이다. 미래 특정 시점에 의사 인력이 부족하여 의료 접근성과 서비스의 질이 낮아지거나, 의사 인력의 확대가 GDP 대비 의료비의 증가로 이어져 국민 부담이 늘어날지 불확실하다. 그러한 불확실성은 잠재적 불안을 불러온다. 지식인은 이러한 사회적 불안에 대답해야 한다.
정부는 11월 21일에 2025년 2,151명, 2030년 3,953명까지 증원을 희망한다는 의과대학 입학정원 수요조사 결과를 발표하였다. 현 입학정원 대비 70%, 130% 달하는 증원 규모이다. 의과대학 나름의 이유와 근거를 바탕으로 산출된 수요일 것이다. 이것이 하나의 지표일 뿐이라고 할지라도 의과대학 입학정원 수요는 개별 의과대학의 지성을 넘어 의학교육 기관의 집단지성이 더 올바른 결론을 도출할 수 있었던 일이다. 미래의 불확실성, 그리고 잘못된 정책은 사회 경제적 영향력이 큰 값비싼 실패(costly failure)로 귀결될 가능성이 있다. 그렇기에 의과대학 입학정원 정책에 참여하는 지식인의 책무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책무가 있다는 것은 의사결정의 효과가 나타나는 미래의 어떤 시점에 책임이 있다는 의미가 아니다. 책무는 의사결정을 위한 정확한 정보를 수집하고 과학적 근거에 기반하여 신중하고 논리적으로 의사결정을 하며, 그러한 결정을 다양한 이해관계자 및 사회와 공유하는 것이다. 그리고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신념과 사명감을 가지고 의사결정의 결과가 성공할 수 있도록 지속해서 노력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의과대학 입학정원 정책에 관여하는 지식인은 이러한 책무의식을 가져야 한다.
2023년 11월 개최된 미국의과대학협회 연례 세미나에서 ‘우리는 고장 난 GPS로 건강을 향한 고속도로에 있다(we’re on a highway to health with a broken GPS)’를 주제로 흥미로운 토론이 있었다. 핵심은 다양한 이해관계자 간의 신뢰 부족이 많은 일을 올바로 하기 어렵게 만든다는 것이었다. 의과대학 입학정원 증원 논의가 고장 난 GPS로 미래 의료를 향한 고속도로를 달리는 모양이다. 의사 인력 양성 정책이 현재 어디에 있는지, 목적지가 어디인지, 어떤 속도로 가야 하는지 혼란스럽다. 이쯤이면 이것도 맞고, 저것도 맞는 것 같다. 의과대학 입학정원 논의가 이해관계자의 신뢰를 바탕으로 이루어지고 있는지도 의문스럽다. 이런 점에서 미국 의료정책연합회 회장 사라 데쉬(Sarah Dash)가 문제를 전체적으로 논의하기 위해 당사자를 소집하는 것이 ‘출발점’이라고 한 말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
의과대학 입학정원 정책의 출발점은 거버넌스 구축이 되어야 한다. 의과대학 입학정원 논의를 위한 거버넌스는 여러 기관과 연구자가 제안한 사항으로 정부를 포함한 이해관계자 대부분이 합의하는 지점이다. 입학정원 책정을 몇 가지 지표나 사회적 정서에 기초하기보다는 과학적 근거에 기반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이론이 없을 것이다. 현존하는 모든 자료를 체계적으로 검토해서 합성하는 체계적 고찰, 정책의 경제적 영향을 평가하는 경제성 분석, 어떤 정책이 더 효과가 있는지를 판단하는 비교 효과 연구 등이 과학적 근거를 생산하는 대표적인 방법이다. 우리나라에는 미국의 보건의료인력분석연구센터(NCHWA), 네델란드의 보건의료서비스연구소(NIVEL) 등과 같이 근거를 생산하는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전담조직이 없다. 또한, 일본의 의사수급에관한검토위원회(医師需給に関する検討委員会), 미국의 보건의료인력위원회(NHCWC), 네델란드의 의료인력계획자문위원회(ACMMP), 호주의 국가의료수련자문네트워크(NMTAN) 등과 같은 이해관계자 의견을 수렴하고 결정하는 거버넌스도 없다. 거버넌스는 절차적 명분을 위한 과정이 아니라 다양한 이해관계자 의견을 수렴하고, 과학적 근거에 기반하여 합리적 의사결정을 할 수 있어야 하고, 그러한 역할과 권한이 부여되어야 한다. 여러 연구에 의하면 현 입학정원을 유지하거나 일부 증원하는 경우 2040년~2050년에는 의사 인력이 과잉 공급될 것으로 예상한다. 입학정원 증원 논의와 함께 입학정원 축소에 대한 논의가 함께 다루어져야 한다. 의과대학 입학정원 관련 근거를 생산하고 정책을 결정하는 거버넌스 구축이 시급하다.
칼 구스타프 융(Carl Gustav Jung)은 사람은 자신과 타인의 ‘다름’으로 인해 고통받는다고 말하면서 자기중심적 사고를 경계하였다. 의과대학 입학정원 정책에 관한 서로 다른 우리의 인식으로 누가 고통받는지, 지식인의 책무가 무엇인지 진지하게 생각해 볼 시점이다.